마티스

앙리 에밀브누아 마티스(Henri Émile-Benoit Matisse, 1869년 12월 31일 - 1954년 11월 3일)는 20세기 야수파 프랑스 화가이다.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꼽힌다. 프랑스 북부 노르파드칼레의 르샤토캄프레시스에서 태어났다.

22세 때 파리로 나가 그림 공부를 하고, 1893년 파리 국립 미술 학교에 들어가 구스타프 모로에게서 배웠다.

1904년 무렵에 전부터 친분이 있는 피카소·드랭·블라맹크 등과 함께 20세기 회화의 제일보로 불리는 야수파 운동에 참가하여, 그 중심 인물로서 활약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 후에는 주로 니스에 머무르면서, 모로코·타히티 섬을 여행하였다. 타히티 섬에서는 재혼을 하여 약 7년 동안 거주하였다.

만년에는 색도 형체도 단순화 되었으며, 밝고 순수한 빛의 광휘와 청순 명쾌한 선에 의하여 훌륭하게 구성된 평면적인 화면은 '세기의 경이'라고까지 평가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에 시작하면서 1951년에 완성한 반(Vannes) 예배당의 장식은 세계 화단의 새로운 기념물이다.

그는 조각·동판화에도 뛰어났고, 직물의 디자인, 삽화 등 새로운 분야도 만들었다. 그리고 대표작으로 <춤> <젊은 선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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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nvas
3호(27X19) - 49,000원  /  6호(41X27) - 59,000원  
10호(53X41) - 85,000원  /  20호(73X53) - 120,000원

* 타일아트
100X100 - 39,000원  /  150X150 - 45,000원  /  150X200 - 55,000원  /  200X250 - 65,000원

*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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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는 1869년 프랑스 북부 카토에서 태어났다. 제법 성공한 곡물 상인이었던 아버지는 아들이 사업을 이어받길 원했다. 하지만 허약 체질이었던 마티스는 사업보다는 조용히 공부하기를 좋아했다. 공부하겠다는 자식을 나무랄 부모는 없다. 마티스의 아버지는 아들이 공부에만 집중하도록 지원했다. 파리로 건너가 법률을 전공한 마티스는 변호사 자격증을 땄다. 고향으로 돌아와 법률사무소 조수로 취직했다. 삶은 사소한 우연 때문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마티스에게도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우연이 찾아왔다. 취직하고 얼마 안 돼서 마티스는 심한 맹장염에 걸렸다. 수술을 받고 꽤 오래 병상에 누워 있었다. 마티스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미술 도구를 사줬다. 오랜 요양에 따분함을 느끼던 마티스에게 심심풀이로 그림이라도 그려보라고 건넨 선물이었다. 마티스의 삶이 새로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재미 삼아 풍경화를 그린 마티스는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다. 캔버스 위에 창조한 자신만의 세계에 마법처럼 푹 빠졌다. 마티스는 법률사무소에 복직했지만, 머리엔 온통 그림뿐이었다. 마티스는 시간만 나면 홀린 사람처럼 그림을 그렸다. 화가가 되기 위해 법조인이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버리기로 했다. 모범생이었던 아들이 예술을 하겠다고 선언하자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냈다. 하지만 마음을 굳힌 아들을 돌려세우진 못했다. 스물두 살의 마티스, 그림 기초도 모르는 화가 지망생은 천재들이 우글거리는 파리에 입성했다.

- 매경프리메엄에서

마티스(Matisse, Henri: 1869~1954) 에 대하여.......

마티스는 오랜 예술 활동을 통해 신고전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등 반드시 그 순서대로는 아니더라도 19세기의 갖가지 미술 운동에서 영향을 섭취하여 자기 예술을 살찌우고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렸다. 

전체적으로 보아 마티스의 양식은 이러한 전통을 무시하고는 생각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그는 20세기의 가장 창의적인 거장의 한 사람으로 변신했고, 오늘날 젊은 화가들에게 끊임없이 막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20세기 전반의 몇 안되는 화가이기도 하다.

마티스의 예술은 분명히 파리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으나, 그의 후기 작품들은 이러한 지역적인 양식을 철저히 뛰어넘고 있었다. 뒷날 이들 작품은 20세기의 국제 미술 문화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파리의 다른 몇몇 거장들에 못지 않은 지위를 굳혔다.

미술사에 있어서 마티스의 명목상의지위는 야수파의 선도자였다. 이는 피카소가, 그리고 어느 모로는 브라크가 입체파의 선도자로 간주되는 것과 마찬기지다. 그러나 야수파는 연약하고도 단명한 운동이었고, 화파를 형성한 후에도 공식화된 강령을 갖춘 적이 없었다. 야수파의 모든 화가들 가운데서도 오로지 마티스만이 치열하면서도 단순화된 색채 조화와 세련된 소묘력을 보다 높은 차원에서 성취해 나가는 위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  블러그 ohyh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