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빈(비엔나)에서 활동한 화가. 아르누보(art nouveau)의 대표적인 작가.
미술이 격동하던 19세기 말에 장식 회화가로 교육받았으나 곧 건축 장식회화에서 탈피하여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게 된다. 젊은 시절에는 사실적인 회화에도 능하였으나 점점 더 평면적이지만 장식적이고 구성적인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화풍 뿐만 아니라 대학 회화라고 불리우는 일련의 문제작들에서 특유의 반항적 / 회의적 주제의식을 보여줘 큰 비난과 함께 명성을 얻은 바 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서 모더니즘 계열의 미술이 빠르게 기존 회화 경향을 대체하였고, 클림트 이후의 작가들은 더이상 클림트와 같은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된다. 자신만의 독창적 화풍으로 확고한 위상을 구축했지만, 그 이전 전통과도 다르면서 훗날 미술과도 다른, 고립된 섬과 같은 위치에 있는 작가. 구스타프 클림트는 독일에서 55세를 일기로 스페인 독감의 증상이 악화되어 뇌경색과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 Canvas
3호(27X19) - 49,000원 / 6호(41X27) - 59,000원
10호(53X41) - 85,000원 / 20호(73X53) - 120,000원
* 타일아트
100X100 - 39,000원 / 150X150 - 45,000원 / 150X200 - 55,000원 / 200X250 - 65,000원
* Poster
A4(297X210) - 15,000원 / A3(420X297) - 25,000원 / A2(594X420) - 35,000원
프리타 리들러 Fritza Riedler (1906)
부채를 가진 여자(1917-1918)
키스(연인) (1908)
쉴로스 카머 공원 가로길 (1912)
나무 아래 Rosebushes
Litzlberg am Attersee (1914-1915)
메이든 (1913)
프리데리케 마리아 맥주의 초상화 (1916)
다나에 Danae (1907)
주디스 (1901)
Mädchen im grünen
두 자녀를 둔 엄마(가족) (1909)
Bildnis einer unbekannten Frau (Frau Heymann)
Dame mit Hut und Federboa (1909)
검은 깃털 모자 (1910)
하나 폰 소녀의 헤드 스터디
요셉 펨바우르(Josef Pembaur)의 초상화 (1890)
주니우스(Junius) (1896)
Die Reiche der Natur
서양 협죽도 덤불을 가진 두 소녀 (1890-1892)
캔바스 (액자포함) | 3호 27X19cm | 6호 41X27cm | 10호 53X41cm | 20호 73X53cm |
배송포함 | 49,000원 | 59,000원 | 85,000원 | 120,000원 |
타일아트 | 100X100cm | 150X150cm | 150X200cm | 200X250cm |
배송별도 | 39,000원 | 45,000원 | 55,000원 | 65,000원 |
아트포스터 | A4(297X210) | A3(420X297) | A3(330X483) | A2(594X420) |
배송별도 | 15,000원 | 25,000원 | 25,000원 | 35,000원 |
캔바스+액자 / 타일아트 / 아트포스터
구매 상담하기
황금색 모자이크 구성에 연인이 정열적인 키스를 나누고 있는 그림. 설명만 들어도 어떤 그림을 이야기하는지 머리 속에 그려질 것이다. ‘황금’, ‘키스’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는데, 오늘 만인의 그림에서는 독보적인 그림체로 오스트리아의 대표 화가로 거듭난 'Never leave VIENNA without a KISS'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에 대해 알아보자.
구스타프는 어릴 적부터 미술을 공부했다. 1876년 14살이 된 그는 비엔나 응용미술학교에 입학한 이후 장식 회화가로 교육받는다. 이후 1883년 졸업해 동생 에른스트 클림트, 동료인 프란츠 마치와 함께 공방을 세운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실주의적 회화 기술을 가지고 건축 벽면 그림을 그리던 그는 영국, 프랑스에 퍼진 아방가르드 미술 운동을 접하고 당시 오스트리아 미술의 보수적인 면에 반발한다.
1897년 비엔나를 중심으로 이른바 분리파(제체시온;Secession)를 결성하여 반 아카데미적인 미술을 전파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동시에 비엔나 대학교 대강당 천장에 그림을 그려달라는 제안을 받는데, 그가 주문받은 주제는 '철학', '의학', '법학'을 상징하는 그림들이었다. 큰 문제없이 그림을 열심히 그린 그는 완성 후 그림이 퇴출 당하는 시련을 겪게 된다.
그의 그림 속 내용들이 문제였던 것이다. 철학, 의학, 법학 모두 마치 인간이 우주 이치를 알기에는 너무나 미약한 존재로, 인간은 삶에서 죽음을 피할 수 없고, 정의보다는 고통과 무질서가 더 가까이 있는 것처럼 해석될 소지가 많았던 것이다.
비엔나 대학교 교수진 일부에서 대강당에 그림을 거는 것을 반대하는 성명을 했다. 물론 당시 구스타프의 그림에 찬성하는 교수들도 꽤나 있었지만, 아카데미 교육을 반대하는 분리파를 움직이는 장본인이었던 바람에 결국 그가 공들인 그림은 취소되고 만다. 하지만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클림트는 비엔나 대학 천장화 중 작품 <철학>으로 대상을 수상하며 보란 듯이 성공한다. 흑백사진으로만 남았던 그의 전체 천장 패널화는 현재는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에 복구되어 전시하고 있다.
출처 : WIPNEWS(http://www.wip-news.com)
먼저 눈에 띠는 것은 화면 전체에서 반짝이는 황홀한 금빛입니다. 그리고 생각을 할 틈도 주지 않고, 작품은 우리의 눈을 스스로에게 빠져들게 합니다. 작품은 제목은 (키스 The Kiss)
꿈속 세상 인 듯, 온통 금빛이 반짝이는 허공에서 한 남녀가 격렬하게 키스를 하고 있습니다.
순간은 멈춰있고 금빛 잎사귀의 꽃들은 이 키스의 축제를 노래하는 것 같습니다.
작가는 이 작품에 금을 사용하였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입혔는지는 알 수 없지만, (키스 The Kiss)에는 8종류의 금박이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작가는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입니다.
- 서정욱 미술토크 Seo Jeongwook Art Ta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