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년 8월 30일 ~ 1825년 12월 29일)는 신고전주의 양식에 속하는 유력한 프랑스 화가로, 이 시대의 탁월한 화가로 평가 받는중이다.

파리에서 출생하였고, 일찍부터 그림에 뛰어난 재질을 발휘하여 1774년에는 로마 상을 받았다. 이듬해 로마로 유학하여 고대 미술에 큰 감명을 받았다. 역사화를 그려 고전주의의 지도자가 되는 한편, 근대 회화의 시조가 되었다. 다비드는 이후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의 친구이자 프랑스 혁명의 전폭적인 지지자가 되었고, 프랑스 공화국하에서 사실상 예술의 독재자 역할을 하였다.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하자 투옥되었으나, 석방된 이후 나폴레옹 1세의 정치 체제에 협력했다. 프랑스 혁명 때에는 문화재보호에 앞장섰다.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후 궁정 화가가 되어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을 그렸으나 뒤에 국외로 도망갔다.

1780년대 역사화에서 그의 지적인 특징은 로코코의 경박함에서 고전적인 엄숙함과 엄정함으로 취향의 변화를 이끌어 내었다. 이 변화는 앙시앵 레짐의 마지막 시기의 도덕적 풍조와 조화를 이룬다.

이 시기에 그는 베네치아적인 색채 사용으로 유명한 앙피르 양식(Empire style)을 발전시켰다. 다비드는 많은 학생들을 거느리고 있었고, 이는 19세기 프랑스 예술에서 (특히 아카데미적인 파리 살롱 회화에서) 그를 굉장히 영향력 있는 인물로 만들었다.

대표작으로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소크라테스의 죽음》, 《마라의 죽음》과 같은 고전적 주제를 다룬 작품과,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 《나폴레옹의 대관식》등이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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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미술 간의 유착? '정경유착', '검언유착'은 들어봤어도 정치와 예술 분야의 유착관계는 쉽게 볼 수 없다. 오히려 예술은 권력에 비판적인 역할을 해온 것으로 느껴지는데, 과거 프랑스 격동기에는 정당에 몸 담을 정도로 권력과 밀접한 관계에 있던 유명화가가 있었다. 오늘 만인의 그림에서는 '정치화가'라는 비판 속에서도 실력으로 인정받는 신고전주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를 소개한다.

파리에서 태어난 자크 루이 다비드는 어릴 적부터 성공에 목마른 아이였다. 미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그는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고 동시에 출세도 하기 위해 20대가 된 이후부터 명실상부한 로마상에 도전했다. 다섯 번이라는 집념의 도전 끝에 1774년 결국 로마상을 거머쥔 그는 이듬해 로마로 유학을 떠나고 고대 미술에 큰 감명을 받는다.

자크는 큰 영감을 받은 고전주의를 기초로 하되, 자신만의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것을 추구했다. 로마에서 파리로 돌아온 그는 파리 아카데미 회원이 되기 위해 고대사를 주제로 한 그림들을 그렸다. 그의 대표적인 초기작은 ‘헥토르의 죽음을 슬퍼하는 안드로마케’, ‘Belisarius Begging for Alms’ 등이 있다.

고전주의 화풍을 선호하던 아카데미 심사원들은 만장일치로 그를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이후 루이16세의 궁정화가로 활동을 하는데,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충성심을 요구하는 드라마틱한 연출의 그림들을 만들어냈다. 1782년 처음으로 왕의 주문을 받아 그린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의 경우 기원전 7세기 로마와 이웃나라 알바 간의 영토분쟁을 다룬 그림이다.

당시에 대규모 전쟁은 많은 희생자를 낳기 때문에 양국에서 3명씩 대표 용사를 뽑아 결투를 벌이는 방식이었는데, 로마에서는 호라티우스 3형제가 알바에서는 쿠리아티우스 3형제가 나섰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으로 양가는 사돈 관계에 있던 집안이었던 것이다. 이런 비극적인 결투에 나서게 된 3형제가 오직 나라를 위해 아버지와 아내 그리고 가족들 앞에서 맹세하는 비장한 장면을 그림에 담은 것이다.

그림에 담긴 메시지는 ‘개인이나 가족보다 우선시 되는 애국심과 충성심’이다. 죽을지도 모르는 결투에 나가는 형제들은 망설임이나 두려움 하나 없이 견고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만약 21세기에 이런 그림이 있다면 얼마나 비판을 받았을까? 현실적이지 않고 모순된 사람의 감정, 애국심 강요 등 비판할 부분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자크의 그림은 루이 16세의 마음에 꼭 들었다. 군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애국자와 개인적인 감정에 흐느끼는 나약한 존재를 비교하는 장치를 두어 왕의 마음을 더욱 사게 된 것이다. 이처럼 과거 왕정시대에는 뛰어난 화가를 통해 왕의 권력을 강하게 만들었다. 즉, 미술이 정치적인 목적의 수단이 된 것은 이미 과거부터 있었던 일이라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화가가 자크 루이 다비드다.

출처 : WIPNEWS(http://www.wip-news.com)

보통 예술가들은 정치보다는 자신만의 세계에 몰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화가는  현실정치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프랑스를 귀족들 손에서 해방시키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그림을 통해 교훈을 주고 싶어 했고, 그의 그림은 실제 그런 역할을 하였습니다.
과묵했으며, 숭고한 이상에 집착했던 이 화가의 이름은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입니다.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의 대표작 (호라티우스형제의 맹세 Oath of the Horatii)입니다. 내용은 형제가 전쟁에 나가기 전 아버지에게 검을 받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싸움의 상대는 사돈입니다. 이 그림이 루브르에 전시 되었을 때 시민들은 작품 앞에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  서정욱 미술토크 Seo Jeongwook Art Talk